2006~2010/Travel2009/06/25 22:50
드디어 시나가와 역입니다. 지금쯤 보라보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어야 정상이겠지만, 사는게 다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쭉 실내에서 혹은 지하로만 다녔으니 거의 12시간만에 쐬는 바깥공기가 상쾌합니다. 후웁~하고 심호흡을 하려는데, 앗! 찬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두툼한 트렌치코드 혹은 얇은 파카를 입고 목도리를 매고 부츠를 신고 다니는군요. 동경은 아직...겨울이었습니다.

시나가와역은 삼성역 처럼 오피스빌딩과 호텔등이 역에 바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동경에 처음 왔을때 서울과 유사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도시라는 첫인상 받았던 탓에 가는 곳마다 '여긴 서울의 어디와 비슷한 곳이군'이라고 연결시키는 몹쓸 버릇이 생겼나봅니다. 규모나 시설면에서 비교우위에 있었지만 그래도 기능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삼성역과 비슷해보이니 일단 삼성역과 엮어봅니다.

역 주변으로 사진속 고층빌딩 같은 것이 여러 개 있었는데, 스트링스 호텔은 특이하게 그 중 한 빌딩의 26층부터 32까지에 있습니다.  다행히 빌딩 2층에서 편의점와 환전소도 발견합니다. 짐을 풀어놓고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오벤또와 남편이 사랑해마지않는 삐루를 사러오기로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올라갑니다. 헛...호텔이 상당히 좋습니다. 남편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로비 소파에 앉아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호텔의 공기를 즐깁니다. 보라보라보다 여기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봅니다. 안가보면 모르는 것이니까요. 체크인을 마친 남편이 활짝 웃습니다. 내일 WBC 결승이 몇 신인지 물어보니 센스쟁이 호텔직원이 '댓즈 베리 임폴턴트 프러브럼'이라며 체크아웃 시간을 2시 30분으로 연장해주더랍니다. 제값 다주고 묵는 거라 좀 아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덤으로 몇시간을 더 얻어옴과 동시에 여행의 첫번째 스케쥴을 단번에 정해온 남편이 대견합니다. 일단 내일 오전은 방에서 WBC를 보는걸로. 하하하.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은 이후 물 한모금 먹지 않은 저희는 방에 짐을 풀어놓고 곧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갑니다. 도시락 천국의 면모를 기대하고 갔으나 이미 늦은 시간이라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지만, 새우튀김이 올라간 볶음면과 뭔지 잘 알기 힘든 도시락을 각각 고르고 맥주, 과자 그리고 방한을 위한 스타킹도 잊지 않고 구입합니다. 방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며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기 위하여 전화를 합니다.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를 하다가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랑 맥주도 샀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어! 샴페인 없나?" 합니다. 얼음이 채워진 통에 담겨 테이블 위에 고이 올려진 샴페인을 언니가 어찌 알았을까요. "그거 내가 선물로 보낸거다. 카드도 있을건데".
오잉. 그제서야 샴페인 옆에 얌전히 놓인 카드가 보입니다.  저흰 그냥 으레 호텔에서 서비스로 주는 싸구려 샴페인이겠거니 생각했는데...으레 호텔 지배인이라는 사람의 프린트된 싸인이 있는 카드인줄 알았는데...아하하하하. 선물이었군요. 그것도 기쁨 두배 서프라이즈 선물이었군요. 큰 글씨로 "Happy Wedding"이라는 쓰여있는 카드를 보니 하루종일 잊고 있었던 신혼여행 기분이 납니다. 암요암요. 신혼여행에는 맥주보다는 샴페인이지요. 무슨무슨 페리에라는 라벨을 달고 있던 이 샴페인은 맛도 어찌나 좋던지 ㅋㅋ

길고 험난한 하루였지만, 끝이 훈훈합니다. 따뜻한 물에 은은한 향의 입욕제를 풀어 몸을 담그니 하루의 피로가 풀립니다. 지금껏 3개월 정도는 기본으로 준비하고 떠나던 제가 지도 한장 없이 시작하는 여행을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그 동안 동경에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면서 머릿속이 즐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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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onji